천리장성에올라고구려를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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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세인트 조회 4회 작성일 2022-08-05 22:03:1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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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역사스페셜 – 고구려성, 만리장성으로 둔갑하다

- 만리장성의 호산산성, 그곳은 고구려 박작성이었다
2009년 4월 중국은 만리장성의 동쪽 끝을 기존 산해관에서 약 2,500KM 떨어진 압록강변 호산성으로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다. 남북방향으로 1,600M의 성벽을 신축했다.
그런데 중국이 새로 쌓은 성벽 아래 동북방향으로 고구려식 석축이 있다.

- 선명하게 남아있는 고구려 성의 흔적
쐐기 모양의 돌을 ‘品’ 형태로 쌓는 전형적인 고구려식 축성법, 성벽과 같은 방법으로 조성한 직경 4미터의 유물은 중국학자가 쓴 발굴기록까지 존재한다. 그러나 중국 단동시는 이 모든 기록을 무시한 채 90년대 초반부터 호산에 장성 신축을 시작해 원래 있었던 고구려 관련 표식을 모두 철거하고 호산에 ‘호산장성’ 이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구당서와 삼국사기를 근거로 찾아낸 이 성의 이름은 고구려 박작성. 이곳은 고구려 해양방어체계의 핵심적 거점이었다.

- 만리장성은 정말 압록강변에 이르렀나?
호산에서 만리장성의 석축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중국.
그러나 제대로 된 발굴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만약 중국측 주장이 사실이라면 호산엔 성과 성을 연결하는 석축의 연결점이 있어야한다. 그러나 성곽 전문가와 함께 현장을 조사한 결과, 신축한 성벽 부근 어디에서도 석축을 발견할 수 없었다.

- 목책과 토담까지 만리장성에 편입시키다
명대 초, 북방의 여진과 몽골을 방어하기 위해 산해관에서 압록강변까지 구축했던 방어선 요동변장을 만리장성이라고 주장하는 중국. 목책과 토담, 석책까지 만리장성의 일부라고 주장하고 있다.

- 변조되는 동북공정, 고구려의 심장까지 치고 들어오다
2009년 4월에 이어 12월 중국은 또다시 통화현에서 한 대 만리장성의 유적을 추가로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통화현은 집안 환인과 함께 고구려의 대표적 발흥지. 만리장성의 하나로 지목된 남대자성은 고구려 유적과 한대 유물이 복합해 출토된 곳으로 일대 주민들은 이곳을 ‘고구려성’이라고 부른다.

- 지금 요동의 고구려사(史)가 위험하다
취재진은 비사성, 성산산성, 백암성, 봉황성 등 요동지역 고구려 성들의 현재를 긴급 진단했다. 그 결과 대다수 고구려 성은 중국식으로 변형돼있었고 그 이름조차 중국식으로 개명된 경우도 많았다.

신역사스페셜 35회 – 고구려성, 만리장성으로 둔갑하다 (2010.5.15.방송)
http://history.kbs.co.kr/
손경훈 : 고구려 1500여년의 역사를 한 순간에 우리는 잊고 있다가 잃어버렸네요ㅜ 중국은 순식간에 얻었고요ㅜ 국력이 답이네요
Mark Online : 이런 프로그램들이 많이 새롭게 제작되길 바랍니다. Kbs가 공영방송답게 대하역사드라마와 이러한 좋은 역사프로그램들을 많이 만들어주길 희망합니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요즘 너무 없어요 역사 드라마도 안만들고...
김철회 : 우리의 역사가 사라져가도 지커볼수밖에 없는 우리나라의 처지에 분노와 눈물이 납니다.
홍 사자 저승안석 : 잃어버린 나라 고구려 언제나 찾으려나 오직 힘을 키우고 올바른 역사관을 지기고 배우자
살구꽃핀마을 : 이제는 식민사학을 버리고 민족사학을 확립하고 학교 교육을 통하여 완성해야 한다

명나라 만리장성 VS 고구려 천리장성 ( 오골성) ② .

중국 최대의 고구려 산성 입니다.

최고봉은 836m , 성 둘레는 16km 나 된다고 합니다.

현재는 봉황산 이라고 부르는데 당나라 때는 오골산 (乌骨山) 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산세가 봉황새가 날개를 펴는것 같아 당태종 이세민이 봉황산 이라고 개칭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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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Track -OrangeHead - Autumn Sadness
✔️Soundcloud - https://soundcloud.com/orangehead88
✔️나눔뮤직 - https://tv.naver.com/v/11014618
락 하워드 : 경치가 대단합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장무근 : 오골성 규모가 상당히 크네요 ㅎㅎ
Keemun Sung : 훌륭합니다
왕강 : 不 . ○距离 . 您的汗水 . 我的泪水 . 谢谢老师 ★
Nick yongkyun Kim : 잘 밨음둥

KBS HD역사스페셜 – 박지원의 열하일기 4천리를 가다 1부 고구려성을 넘어 요하를 건너다 / KBS 20060728 방송

- 열하일기의 ‘열하’ 는 어떤 의미인가?
박지원은 팔촌형이자 영조의 사위인 박명원의 자제군관 자격으로 연행길에 올랐다. 연행길은 보통
압록강을 건너 북경에 도착하는 것이 정해진 루트. 그러나 박지원 일행이 북경에 도착했을 때,
황제는 내몽고 지역에 위치한 ‘열하’ 에 있었다. 열하는 청나라 황제들이 즐겨 찾던 휴양지. 때문에
사신단은 북경에서 약 230킬로미터 떨어진 ‘열하’ 까지 가게 됐다.

- 조선사신단은 왜 노숙을 해야 했나?
제1편의 여정은 고구려의 옛 땅인 단동에서 요하까지. 취재팀은 고구려 전문가인 우석대 조법종
교수와 함께 대장정 길에 올랐다. 압록강을 건너 중국 대륙에 들어와 첫날을 보낸 조선사신단.
그들은 천막을 짓고 노숙을 해야 했다. 청이 정한 ‘봉금지대’ 때문이다. 청나라는 자신들의 발상지인
만주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봉금지대를 제안, 구련성부터 국경관문소인 ‘책문’ 까지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 취재진은 책문을 지나 ‘봉황산’ 에 도착, 옛 고구려의 성을 확인했다.

-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박지원이 본 역사의 비극!
봉황산성을 떠난 취재진은 ‘초하구’ 와 ‘연산관’ 등을 거치며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뼈아픈 역사를
반추한다. 박지원은 [열하일기]의 ‘허생전’ 에서 북벌의 무모함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청석령과 석문령. 조선사신들은 청석령 일대를 고구려의 고토로써 특별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현지에서는 지금까지도 고구려의 생활 방식인 ‘부경(창고의 하나)’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중원을 누빈 고구려의 기억
다음 행선지는 요동 벌판. 우리에게는 만주 벌판으로 더 익숙한 곳이다. 고구려는 한때 이 넓은
요동벌의 주인이었다. 취재팀은 중원을 누빈 고구려의 역사를 찾아가 봤다. 요동벌과 산봉우리들이
만나는 접점에는 고구려의 산성이 일렬로 줄지어 있다. 중원 세력들이 넘보지 못하게 1차 방어선으로 산성을 구축한 것이다. 요동벌심장부인 대도시 ‘요양’ 은 중국 대륙 동서남북을 잇는 요충지로,
고구려는 여기에 ‘요동성’을 세웠다. 요동성을 둘러보는 것은 조선 사신들의 연례행사였다.

- 청이 일어선 곳, 조선은 피눈물을 흘린 곳 ‘심양’
청태조 누르하치의 아들인 청태종 ‘홍타이지’ 는 병자호란 때 직접 군대를 이끌고 조선을 침략해
삼전도의 치욕을 안겨준 인물이다. 그는 심양에서 국호를 청으로 정하고 황제 즉위식을 올렸다.
한편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볼모로 끌려와 8년간 억류당했던 곳도 심양이다. 소현세자가 심양에
있던 시기, 청은 이미 만리장성까지 진출했으나 조선은 숭명반청을 고집했다. 그 때문에 조선의
백성들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심양 곳곳에 남아 있는 당시 조선의 애환을 취재했다.

HD역사스페셜 55회 – 박지원의 열하일기 4천리를 가다 1부, 고구려성을 넘어
요하를 건너다 (2006.7.28.방송) http://history.kbs.co.kr/
슈퍼제이 : 1. 구련성 : 금나라가 고려를 방어하기 위해 압록강 가에 쌓은 9개의 성 - 고려와 금나라의 경계는 압록강이었내. 강단사학은 고려 영토가 청천강~원산만이라고 가르치는데
Johnathan Ha : 박지원씨는 열하일기를 통해 우리들도 모랐던 대한민국의 현•고대 역사들을 깨닫게 해주네요.
지혜의 빛 : 인문학의 숲 : 열하일기 정말 명작인데 이처럼 좋은 영상으로 만나니 더욱 좋네요! 감사합니다 ☺️
꽃 과 별 : 박지원 이 훌륭한 관찰력과 탁월한 문장력으로 열하일기 여행록을 작성한데 경탄했다. 발전된 청나라 ㅡ중국 문화 상황을 알았으니, 조선에서도 그것들을 실현시키는 정치력을 갖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보기 : 길을 넓히고 수레 로 짐을 운송하는 수단 ]

다만, 박지원 의 인간성 에 지금도 흠결 로 내게 남아있는 것은, 15~16세 어린 소년이 말 고삐잡고 가다가, 발을 다쳐서, 울며불며 고통을 겪으며 걷는 걸 보고도, 그냥 지켜보고 갈 뿐,

ㅡㅡ 나중에 파견단 단장격인 관리가 그 애를 자기 말 에 태우고 갔다는 기록...
Jin Lee : 열하일기 정말 재미있는데
왜 영화나 드라마로 나오지 않는걸까?

... 

#천리장성에올라고구려를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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