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울의 붉은유산 답사기-9 '1920년대 조선 사회주의운동, 풍운의 조직 서울청년회 회관터'

페이지 정보

작성자 편파TV 작성일20-06-28 00:00 조회43회 댓글0건

본문



서울청년회 회관 터 / 견지동 74

1921년 1월 서울에서 조직된 최초의 전국적 청년조직.

이득년 장덕수 등 민족주의자들이 주도하였으나, 한성임시정부를 주도하다 감옥에서 나온 김사국이 지지자들과 서울청년회에 가입, 김사국은 7인 지도부 중에 1인이었으나 조직은 점점 좌익화.

친일 전력이 있는 김윤식을 청년회 지도부 다수가 사회장으로 하자고 하는 상황에서 김사국은 반대를 하지 않고 기다리다 사기공산당사건이라는 네이밍을 들고 나옴. 장덕수 등이 이동휘의 한인사회당이 받은 코민테른 자금의 상당액을 받음. 이들을 고려공산당 국내파라고 함. 장덕수와 김철수가 대표적인 인물.

김사국은 이들이 사기당을 만들어 자금을 유용하고 흥청망청 사용했다고 공격하여 조선청년연합회 제3회 정기총회에서 이를 공격해 연합회를 반분함.

연합회를 반분한 서울파는 노동 농민 등 적국적인 조직을 만들며 준정당의 역할을 수행함. 무력화된 청년회를 대신하여 서울파는 전국적인 다수파로 급부상. 김사국의 오른팔과 왼팔이라고 할 수 있는 이영과 한신교의 활약으로 사회주의 조직으로 탈바꿈. 이때부터 서울파의 질주가 시작됨.

1923년 3월 경성에서 100여개 단체가 참여하는 전조선청년당대회 개최를 주도했으며 전조선노농대회도 준비. 1924년 조선청년총동맹의 창립을 주도하면서 방점을 찍음.

코민테른에게 국내 통일당 건설의 전권을 가지고 들어온 김재봉과 논의를 해야 하는 상황. 김사국은 통일당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일관되게 코민테른과 절연을 요구함. 김재봉과 화요회가 받아들일수 있는 조건이 아님. 1924년 가을부터 화요회는 전국조직을 건설하고 당 건설을 기정사실화 함.

서울파와 김사국은 비밀전위정당을 건설함. 고려공산동맹 김사국이 책임비서. 이율배반인 것은 코민테른과 절연을 요구하던 김사국이 고려공산동맹의 통일당 요청을 위해 코민테른행.
러시아 일대를 헤매던 김사국은 폐병으로 귀국. 1926년 세상을 떠남. 이후 서울파는 급속히 조직이 축소되고 방향을 잃음. 3차 조선공산당 전권을 장악한 고려공산당 상해파의 국내파 김철수가 통합을 추진하자 흡수됨.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8,266건 1 페이지
  • RSS
게시물 검색
Copyright © www.gangbuklib.seoul.kr.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help@oxmail.xy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