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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역사스페셜 – 조선과 통하라, 코리아호의 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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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BS역사저널 그날 작성일20-09-28 00:00 조회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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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덜란드의 긴급명령, 범선 코리아호를 제작하라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일본, 대만, 인도 등에 상관을 설치해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무역을 했다.
동인도회사의 업무를 세세히 기록한 자료집에서 놀랍게도 1669년 3월 건조된 ‘코리아’라는 이름의 선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길이 약 25미터, 탑승인원 20명 정도의 소형 크기였던 코리아호. 하멜표류기 이후 미지의 나라였던 조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기동성이 뛰어나 빠르게 항해 할 수 있던 코리아호는 조선을 탐사하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출항한다.

- 조선 앞바다로 진입하라
조선은 코리아라는 이름을 제외하곤 알려진 게 없었다.
다만 금과 보석이 많은 부국으로 인식돼 네덜란드, 영국 등 여러 유럽국가에서 교역 가능성을 중요하게 여겼다.
네덜란드는 조선에 가기 위해 1639년 ‘보물섬 원정대’ 라는 탐사대를 꾸려 태평양까지 진출하나 풍랑으로 실패한다.
다른 유럽국가들과 치열한 무역 경쟁을 벌이고 있던 영국의 동인도 회사도 조선에 교역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한다.후에 조선, 영국, 네덜란드 사신들이 당시 후시미성이라는 곳에 모이게 된다. 조선의 관료를 눈앞에서 볼 기회가 생긴 영국은 조선통신사와 직접 접촉을 시도하지만 조선통신사의 호위 임무를 맡고 있던 쓰시마 번주는 이들의 요청을 거부한다.

- 중국, 일본의 중계무역기지로 조선을 선택한 네덜란드
에도시대 많은 유럽인들이 일본으로 들어왔다. 이들의 목적은 일본의 은과 선교. 하지만 일본은 유럽인에게 무역 이외의 것을 원치 않았다. 네덜란드는 무역 이외의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막부에게 증명했고, 1641년, 막부는 나카사키에 인공섬을 조성해 네덜란드 상인들을 이주시킨다. 통상을 업으로 삼는 네덜란드인은 중국과 일본의 중계무역을 위해 새로운 무역기지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조선은 매력적인 중계무역기지였다. 네덜란드는 조선과 접촉하여 직교역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코리아호를 건조한 것이다.

- 멈춰버린 코리아호, 조선의 운명
코리아호가 출항한 후 암스테르담 동인도회사 위원회에 조선과 관련된 일본 현지 상인이 쓴 편지가 도착한다.
조선은 가난한 농업국가로 교역물품이 적고, 어떠한 거래도 원치않는다는 것과 일본 막부의 반대가 있을 거라는 내용이었다.
네덜란드는 출항한 지 10년 뒤인 1679년 11월 15일, 코리아호를 폐선한다. 배의 이름인 코리아에는 결국 도착하지 못한 채였다.

신역사스페셜 25회 – 조선과 통하라, 코리아호의 출항 (2010.1.30. 방송)
http://histor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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