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순수한이성의한계안에서의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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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여의도목장갑 조회 93회 작성일 2020-09-14 22:57:0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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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도덕의 한 단계일 뿐이다??! | 임마누엘 칸트 종교철학 | [오늘의 신학공부]

오늘도
칸트를 공부했습니다

#현대신학 #칸트 #종교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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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스탠리 그렌츠, 로저 올슨, "20세기신학", 신재구 역, IVP
-인스타그램 레이아웃 : 헤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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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신학공부는

1.함께 신학을 공부합니다
2.신학생이지만 신학을 잘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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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김군 : 잘 이해 되네요
정영광 : 칸트가 신학자인가요 철학자인가요?
권희현 : 좋은 정리 감사합니다!
진목TV 부담주는 종교/신학 이야기 : 유익한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찍는 영상들이 전부 다 좋아요. 본 영상의 칸트 같은 경우는, 그렌츠와 올슨이 쓴 책을 참고한 것인지 제가 잘 모르겠지만, 몇 가지 오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칸트의 용어가 미묘한 점이 있지만, 실천이성은 의지, 이성의 사실, 자유입니다. 이 자유로부터 인간은 도덕적인 존재임을 부인할 수 없게 됩니다. 단지 자연에만 속했다면 인과율에 갇힌 존재이므로 책임을 물을 수가 없겠죠. 하지만 인간은 그러한 감각계에 속했을 뿐 아니라, 예지계/지성계에도 속했는데, 그 증거가 자유입니다. 다만 인간은 천사나 신이 아니기 때문에, 즉 이성적 존재자이지만 감각계에도 동시에 속한 존재기 때문에 도덕이라는 자극을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명령의 형태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정언명법(Kategorische Imperativ)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렇게 주어지는 도덕을 다하는 것은, 인간의 의무이므로, 그냥 그렇게 살면 됩니다. 굳이 영혼불멸과 신을 요청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칸트에게 도덕은 종교 없이 그 자체로 완성됩니다. 그럼에도 칸트가 굳이 저 두 가지를 요청하는 이유는, 그가 제시한 '최고선(das höchste Gut) 때문입니다.

최고선이란 덕과 행복이 일치하는 것을 가리키며, 덕이란 도덕적 의무를 완전히 이행한 상태, 곧 '최상선'(das oberstes Gut)인데,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한한 진보'가 필요합니다. 칸트적 유명한 요약이 당위가 가능을 함축한다(Sollen impliziert Können)입니다. 도덕이 의무라면, 거기에 도달하는데 영혼불멸은 당연해야 하므로 '요청'이 되는 것이죠. 하지만 행복은 전혀 무관합니다. 덕과 행복을 뒤섞은 기존의 윤리학,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 모두 칸트는 비판합니다. 그럼에도 앞서 말씀드린, 감각계에 속한 인간은 동물로써 그 목적을 성취해야하며, 그 목적이란 다름아닌 행복입니다. 그런데 도덕적 의무를 다한다고 하더라도 행복은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것도 아니며, 도덕적 의무를 다함으로써 만족하는 것은 도덕적 행복일 뿐, 감각계에 속한 동물로써의 인간이 성취해야할 자연목적의 행복은 아닙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덕과 그에 비례하는 행복을 주장했습니다. 칸트는 거기에 착안하여, 그와 같이 덕에 비례하는 행복을 최고선이라 주장하며, 이 최고선을 위해서는 바로 그런 도덕적인 신이 요청된다고 하였습니다. 최고선은 그래서 칸트 해석에서 사실 대단히 큰 논쟁거리이기도 합니다(대표적인 실례를 실버-벡[존 실버와 루이스 화이트 벡] 논쟁입니다. 이것은 너무 자세히 들어가는 것이니 더 썰을 풀기는 무의미하고...).

게다가 말씀대로, 칸트의 책 제목이기도 한,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는 대단히 중요한 책입니다. 거기서 칸트는 갑자기 근본악(das radikal Böse) 이론을 펼침으로써, 거기서 그만의 종교이론을 펼칩니다.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가 없다면, 그에게 종교나 혹은 신앙(아니면 희망)은 도덕을 위한 것에 불과할 수 있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습니다만, 칸트가 저 책을 내는 순간 당대에도 배신감을 느꼈다는 사람이 있었고(예를 들면 괴테는 칸트의 근본악 교리를 이라고 비난하면서, 그의 철학적 외투의 치명적인 오점[Schandfleck]이며, 그런데 그 오점을 기독교인은 키스하겠다고 달려든다는 식으로 조롱하기까지 합니다), 지금도 저 책으로 인해, 특히 근본악으로 인해, 최고선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난처해하는 칸트 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칸트는 이렇게 표현하면 좀 이상하지만, 종교는 도덕 외에 아무것도 아닌데, 도덕이 곧 종교는 아니게 되는 그런 말로하기 어려운 주장을 했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저 도덕적 의무를 다하는 것 조차도, 근본악으로 인해 인간에게는 불가능하므로, 종교적인 혹은 초월적인 무언가가 없을 수 없다는 것이죠. 그것을 말하는 것이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라는 책입니다. 다시 말해 초월적인 것에 대한 배제가 없지 않습니다(하지만 이 용어들도 a priori, transzendent, transzendental 간의 번역 문제 뿐만 아니라 개념 문제가 있긴한데...핵심은 신적 도움을 배제하지 않으며, 오히려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계시나 삼위일체 이런 것을 문자적으로나 기존 교의적으로 생각하는 건 거부합니다.

제가 칸트를 연구하고 다시 칸트에 대해서 신학자들의 서술을 보니 거의 다 틀렸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다수입니다. 또 다수의 철학자들은 칸트에게서 종교를 무조건 도덕으로 환원시킵니다. 이런 점으로 인해 칸트의 종교가 대단히 연구가 부족하다고 할 수 있고, 그나마 국내에는 김진 교수님의 <칸트와 종교>라는 논문 모음집이 정말 최근에 나왔는데, 상당히 도움이 됩니다. 사실, 칸트를 신학생이 그렇게 깊이 알 필요는 없겠지만, 개론적 지식에도 워낙 엉터리가 많다보니 쓸데없이 길게 남겨봤습니다. 좋은 영상 다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신학 공부에 정진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
Ray Lee : 도덕과 윤리의 근본적 차이를 설명하는 영상도 한 번 부탁해요~!
Damascus TV : 오늘도 좋은 정리 잘 보고 갑니다

[8대 고전읽기] 순수이성비판 (한자경 교수)

(재)플라톤 아카데미가 인문학 확산사업의 일환으로 제작한 고전 독서 가이드 영상입니다.

순수이성비판 (칸트)

사유의 본질과 인간의 이성적 능력에 대한 비판적 탐구

- 한자경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교수)
김원태 : 감사합니다

끄적끄적 2/철수 김원태

힘은 행복의 동반자며 행복감의
근원이다.

금전의 힘
건강의 힘
권력의 힘
지식의 힘
생각하는 힘

힘이 없는 행복은
포기와 무늬일 뿐이다.

포장된 행복은
짧으며 대가의
고통이 따른다
삶의 근육량을
키웁시다.

행복감
환희감 긍정적 삶
저항력을 키웁시다.
고뇌의 삶
고통의 삶
허기진삶.
차동원 : 엄청난 강의며 대단한 요약설명이였습니다. 강의 감사합니다
Hyung-Yul Cho : 처음 강의를 들었는데 용어자체에 이해가 안되엇읍니다. 생각컨대 한 다섯번 정도 다시들으면 우선 용어에대한 친숙성으로 점차 이해가 되리라고 믿읍니다.
JACK LEE : 설명을 너무 잘하시네요.
예전에 철학 배우다가 임마누엘 칸트에서 와르르 무너졌습니다ㅋㅋ
칸트 사상을 아는 상태에서 심리학 보면 인지심리학 뇌과학까지 전혀 새롭게 보이죠
장홍관 : 일체유심조
[17년차]희귀병 경건TV : “철학의 의무는 오해에서 생긴 환영을 제거하는 일이다”(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1], 백종현 옮김, (경기: 아카넷, 2006), 169p.)
4호선인문학TV : 에너지인문학TV

(칸트와 인공지능) 교수님의 혜안으로부터 칸트배우고있습니다
moonbj21 :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소묘화를 그리시는 것 같아요. 와우신 것도 아닐 것인데 수정된 말이.없네요.
강주효 : 천문지리 ㆍ인문지리로 바뀌는 통일체적이다ㅡok
박경철 : 설명을 들어니 다시한번책을볼 용기가
생기네요 감사합니다

[철학유치원] 칸트 : 순수이성비판 7분만에 이해하기

철학, 그중에서도 '인식론' 분야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일컬어지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7분만에 읽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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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를 꼽으라면 칸트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헤겔과 더불어 소위 서양철학사의 5대 천왕이라 불리는데요. 특히 이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인물 한 명을 꼽아야 한다면 칸트는 많은 경우 플라톤과 경쟁하며 정상을 다툴 겁니다. 그만큼 서양철학사에서 칸트의 위상이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사람들은 흔히 그의 사상을 ‘인류 정신사를 완전히 뒤바꾼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고 표현합니다. 태양이 지구 주변을 돌고 있다는 천동설을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로 완전히 뒤집어 놓은 것처럼, 칸트의 사상 역시 철학과 인류 정신사에 있어 거대한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는 것이죠. 우리는 이번 시간에 칸트의 3대 비판서 중 첫 번째 책이라 할 수 있는 순수이성비판의 내용을 살펴봄으로써, 그가 철학의 한 분과인 인식론에 일으킨 거대한 변화와 마주하고자 합니다.

칸트 이전의 인식론에서 대상은 ‘사물 자체’에 해당합니다. 대상은 그 자체로 완결된 형상을 지니며 주체에 앞서, 그리고 주체와 독립해서 존재하죠. 즉, 주체가 대상을 인식하든 인식하지 않든 관계 없이 대상은 그 자체로 있습니다. 이런 사고관에 따르면 인식은 대상을 비추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마치 거울이 사물을 비추는 것처럼 마음이 대상을 반사하는 가운데 인식이 이루어진다고 본 것이죠.

이처럼 마음을 거울에 비유하는 전통적 인식론에서는 참과 거짓의 기준 또한 대상에 두고 있습니다. 마음 속에 있는 표상이나 그것을 표현하는 말이 참이기 위한 조건은 그것이 대상과 일치하는지 여부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죠. 우리는 이러한 관점에서 나온 인식론을 ‘진리 대응설’이라 말합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리의 생각이나 말은 대상과 일치할수록 참됩니다. 반면 대상이 없는데 있는 것처럼 말하거나 원래의 대상과 다르게 말하면 거짓이 되죠.

그러나 칸트의 인식론이 시작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우위를 차지하게 되는 건데요. 그가 보기에 지각은 물론 대상 자체의 성립 조건이 주체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상은 주체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사물 자체일 수 없습니다. 대상은 오로지 주체와의 관계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것, 다시 말해 ‘현상’에 불과해집니다.

여기에 따르면 참과 거짓의 기준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체가 대상을 원래대로 반영하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주체 내의 인식능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표상의 참과 거짓이 결정되는 것이죠.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통해 칸트는 세상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모습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방식을 문제 삼습니다. 즉, 인식의 메커니즘을 통해 세상이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 순수이성비판의 목적이자 목표라 할 수 있는 것이죠.

칸트가 말한 인식의 메커니즘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은 도식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간에 위치한 ‘현상’이란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들을 말합니다. 지금 나타나면서 보이고, 들리는 구체적 경험의 세계 전체가 바로 현상계이죠.

그렇다면 현상의 내용은 어디서 올까요? 바로 현상계 배후에 있는 물자체에서 옵니다. 물자체는 대상이 주체에게 나타나기 이전의 사물 자체를 말합니다. 여기엔 시간과 공간이 없으며, 우리가 현상계에서 발견하는 어떤 규칙이나 질서도 없습니다. 때문에 현상계에 있는 주체, 즉 인간은 물자체를 알 수 없죠.

그럼 현상계에서 경험되는 형식적 질서는 어디서 올까요? 바로 도식 오른편에 위치한 주체의 마음에서 옵니다. 3차원적인 공간이나 시간적, 인과적, 합리적 질서는 모두 주체 안에 있는 인식능력들에 의해 부과된 어떤 형식입니다. 세상이 인간에게 현상하고 개별적인 대상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형식은 의식 내부에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다는 것이 순수이성비판이 가지는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의 핵심입니다.

자, 조금 이해가 안 되는 분들을 위해 컴퓨터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죠. 가령 컴퓨터에는 시청각적으로 구현되는 모니터, 즉 스크린이 있습니다. 이 스크린은 칸트적 의미에서 ‘현상계’라 할 수 있죠. 그렇다면 스크린에 무언가 나타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바로 입력된 내용입니다. 기억 장치에 아무런 내용도 저장되어 있지 않다면 스크린에는 아무것도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죠. 이건 아마도 칸트의 관점에서 ‘물자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더불어 저장된 내용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프트웨어는 정보가 화면에 구현되기 위한 형식적 조건입니다. 소프트웨어가 달라지면 똑같은 내용도 스크린에 나타나는 방식이 달라지죠. 어떤 소프트웨어에서는 흑백으로 그치던 화면이 다른 소프트웨어에서는 컬러로 구현되기도 하며, 평면적 재현에 그치던 것이 3차원으로 변환되기도 합니다.

칸트의 인식론에서 ‘소프트웨어’는 의식에 내재하는 형식입니다. 의식의 형식은 경험 이전에 있으면서 그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선험적’이죠. 그 의식의 선험적 형식이 없다면 대상은 현상계에 나타날 수 없습니다. 이는 선험적 형식 없이는 경험이 성립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죠.
JACK LEE : 철학 배울때 그리스 철학자들은 쉽게 넘어갔고 토마스 홉스, 르네 데카르트, 프란시스 베이컨, 장자크 루소, 존 로크 까지도 어떻게 지나왔는데 임마누엘 칸트에서 와르르 무너짐ㅋㅋㅋㅋ 근데 이거 알고 심리학 배우면 ㄹㅇ 새로운 세상이 열림
4호선인문학TV : 선생님의 요약으로 부터 많이 배우고있읍니다.
(칸트와 인공지능)
작은 작업을 소개합니다
가을방학 : 우연히 알게된 채널인데 너무 잘보고 있습니다
정주행중이에요 ㅎㅎ
그 어려운 칸트의 철학을 이렇게 쉽게 설명해주시다니 ㅠ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좋은 콘텐트 부탁드립니다^^
winbike57 : 여전히 어렵습니다. 선생님 과제가 칸트는, 세상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사람은 어떻게 인식하는가? 칸트는 무엇을 행복으로 여기는가? 등으로 인터넷 온갖 것을 다 뒤지는데, 도저히 너무 어렵네요 ㅠ ㅠ 못찾겠습니다. 이 영상도 역시 어렵네요 ㅠ ㅠ
김태완 : 이런 좋은 채널을 모르고 있었다니!
유익한 영상 감사합니다ㅎㅎ
이진훈 : 공리주의는 쉽게 이해했는데 인식론은 어렵다 ㅠㅠㅠ
스파키민 : 철학 및 문학서적을 평생 단 한권도 읽지않는 사람들이 넘치는 이 세상에서 이 영상은 최상의 가치를 발한다고 감히 생각합니다. 백종현교수님 역서인 '순수이성비판1,2'를 구매하려고 고민하는 제게 한 줄기 빛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유튜브 인증마크 : 쾅!
로버트 액설로드 : 선험적 형식 없이는 경험이 성립할 수 없다 = 뇌는 베이지안 추론 기계다
월든 : 너무 어렵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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