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창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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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꼬꼬 조회 75회 작성일 2021-07-30 08:08:4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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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미 - 선창 (1941)

노래 이야기

1920년 충남 예산에서 출생한 고운봉 선생님은 1937년 17세가 되던 해, 서랍장에서 아버지의 돈을 훔쳐 서울로 무작정 상경하게 됩니다.
당시 본인이 존경하는 많은 가수들을 보유하고 있던 태평레코드에 찾아가게 되고, 문예부장이었던 박영호 선생님과 작곡가 이재호 선생님을 만나게 됩니다.
두 사람은 음악성과 식견을 갖추고 있었기에 곧바로 청년 '고명득'을 태평레코드의 전속가수로 채용하고 그에게 '운봉'이라는 예명을 지어주었습니다.
곧바로 그들은 3개월간의 순회공연에 돌입하게 됩니다.

신인이었던 고운봉 선생님의 입장으로서는 큰 행운이었고 꿈같은 세월이었을 것입니다.
이후 1939년 '국경의 부두'라는 곡으로 정식 데뷔를 하게 되었고,
40년 '남강의 추억'이라는 곡으로 인기 가수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당시 고운봉 선생님을 눈여겨보던 오케레코드의 이철 사장은 1940년 가을에 스타우트를 감행하게 됩니다.
이철 사장의 예감이 적중한 것인지, 1941년 여름 무더위 속에서 탄생한 '선창'은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며 스타로서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비린내 나는 부둣가엔 이슬 맺은 백일홍
그대와 둘이서 꽃씨를 심던 그날도
지금은 어데로 갔나 찬비만 내린다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울어본다고 다시 오랴 사나이의 첫 순정
그대와 둘이서 희망에 울던 항구를
웃으며 돌아가련다 물새야 울어라"

노래 속 화자는 비오는 날 선창가를 걸으며 헤어진 사랑을 회상하고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행복했던 과거에 반해 그것을 그리워하며 어쩔 수 없는 현실을 그려내며, 나라를 잃은 슬픔에 탄식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달래주었습니다.
일제 치하, 학생들과 지식인들에게 널리 사랑을 받으며 오랫동안 애창되고 있는 노래입니다.

작사가 조명암 선생과 작곡가 김해송 선생은 이후에 모두 월북하여 활동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이의 이름으로
등록되어 알려졌습니다.
2000년 고운봉 선생님의 고향인 충남 예산군 덕산온천에 '선창' 노래비가 세워졌고, 이듬해인 2001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선창에 울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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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창에 울러왔다 · 이난영

그시절 그노래 41집(이난영)

Released on: 1999-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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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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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창 · 조명섭

강원도 아가씨

℗ 주식회사 로이

Released on: 2019-12-14

Composer: 이봉룡
Lyricist: 조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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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창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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